통적으로 중국은 단일한 정치적 통일체로 인식되었다. 소위 중국문명이라 불리는 문화적 실체의 존재도 역시 단일하고 통일적인

상이 연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한 중국문명이 확립되기 이전의 시대, 즉 신석기문명에서 청동기문명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에는 각 개별지역마다 다양한 문화가 꽃피고 있었다. 특히 신석기문화와 관련해서는 「중원의 선진성과 이것에 의해 자극된 주변문화의 발달」이라는 전통적 도식에서 벗어나 기원과 계통이 다른 여러 신석기문화가 병행하면서 발전했다고 하는 이론이 일반적인 정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각 지역별로 병행 발전하던 신석기시대의 문화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각 지역에 따라 발전 속도의 불균형이 생긴다. 결국 중원을 중심으로 청동문명이 발전하게 된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중원에 위치한 商周文明의 선진성이 두드러지면서 이윽고 타 지역의 지역문화를 압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시기의 商周文明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중국문화처럼 중국 전지역을 확실하게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각 지역마다 성격과 계통이 다른 신석기문화의 전통이 청동기시대에도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근래에 사천서부평원에서 발굴된 청동기문화는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문명은 중원문명과 계통을 달리하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천성 광한현 삼성퇴에서는 거대한 제사갱이 발굴되었는데 이 곳에서 발견된 청동기는 그 양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사진과 그림을 통하여 중원지역의 청동기문화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지역에서 중원과 다른 독자적인 청동기문화가 발전하였다고 하여 중원지역의 문화와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사천서부평원에서만 고유한 청동기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발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천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진령산맥 및 대파산맥과 같이 높고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격리된 분지지형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꾸준한 문화교류가 있었다. 또 장강의 하천을 통하여 장강유역의 문화와도 교류하였다. 이점을 사진과 그림 및 주변지역의 동영상 자료를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요컨대, 사진과 그림 동영상 자료를 통하여 사천서부지역, 특히 사천성 광한현 삼성퇴 청동기문화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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